현대인의 생활은 아파트 중심의 공동주택에서 주로 이루어 집니다.
그나마도 이놈의 집값이라는 것이 하늘높은 줄 모르고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어, 서민의 입장에서는 내집마련이 정말 "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주거문화가 이제는 부의상징이자 자산증식의 대상이 되어버린거지요!

뭐 남자 여자를 굳이 따지고 싶지는 않지만
옛날에는 남자가 태어나서 자기 집 한채 짓는 것이 성인으로서 그리고 일가를 이루는 가장으로서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였습니다.
어떻게 여러분은 집한채 지으셨는지요.........돈주고 사는 아파트 같은거 말고요!!!ㅋㅋ

요즘 세상에 자기손으로 자기 집을 짓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것도 업자나, 대규모 인력의 도움없이 순수하게 내 손으로 집을 짓는 것이 정말 가능한 걸까요!!

여기 그런 미친 짓?에 도전 한 한 남자가 있어 소개합니다.
다름아닌 저희 형님입니다.
오보에를 전공한 형님과 피아노를 전공한 형수님은 평생 교육사업을 하며 살아온 평범한 부부입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날인가 "내손으로 집을 한번 지어보고 싶다고 나선것이 2006년 봄입니다.
전광석화........판단이 서자 땅을 구입하고 터작업을 한다고 가보니 이렇게 생겼더라구요!


정말이지 답답했습니다. 어떻게 집을 짓는 다는 건지....그것도 인부도 안쓰고 혼자서....
어찌됐든 동생된 죄로 주말이면 시간 나는데로 나가서 일손을 도왔습니다. 처음 한 석달동안은 지붕에 올릴 서까래를 벗기는 작업을 하더라구요! 편백나무를 통째로 가져다가 성인남자가 하루종일 벗기면 10개 정도 벗길 수 있습니다.
그 작업만 석달이 걸렸고, 벗기고 나서는 샌딩작업이라고해서 매끄럽게 사포 작업을 합니다. 것도 만만치 않은 일손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목재소가서 기계로 벗기면 30분이면 되더라구요!! 젠장...그 걸 넉달에 걸쳐서 했습니다. 손이 부르트도록....
뭐 기계로 벗기면 자연미가 없다나 어쩐다나.......우--씨
그러고 나니까 어느 날 갔더니 땅에다가 애들 장난처럼 회가루로 그림을 그리고 돌을 쌓더니 그게 집이 된답니다. 내가 미쳐!!
그게 이겁니다.

그리고 나서는 황토(정확히 말하면 흙)를 반죽해서 농구공만하게 만들어 여기에 쌓아가는 겁니다.
애들 소꿉놀이를 좀 크게 한다고 생각하시면 될거예요!! 이때가 8월이었는데 비라도 올라치면 또 그걸 모두 덮어야 합니다. 안그러면 무너져 내리니까요! 한번은 갑작스런 소나기에 정말 공들여 쌓은 집?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습니다. 조카 녀석들은 우리집 무너진다고 울고불고 그런 난리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흙과 나무를 쌓기를 한달여 드디어 지붕이 올라갑니다.
서까레를 올리고, 단열땜에 황토도 올리고, 방수포를 덮고, 그 위에 피죽을 올립니다. 피죽은 말그대로 나무 껍질 벗기고 난 속 알맹이를 팬 나머지 부분입니다. 그래야 자연미가 있고, 흙집과 어울린답니다.
그리더니 여기에 2층도 올린답니다. 손을로 쌓은 흙장난 집에 2층이라니 가당키나 한건지 모르겠지만, 뭐 따라서 할 수 밖에요!
올라가긴 올라가더라고요
지붕까지 다 올려 놓고 나니까 흙이 마르면서 쩍쩍 금이가는 것을 모두 찾아 메우고, 나무망치를 만들어 하루 왠종일 벽을 두드립니다. 아무 생각없이 나무망치질을 하고 있자니 무슨 도 닦는 사람 같더라고요!! 암튼 그 후로도 갈라지면 메우고, 두드리고 하는 작업은 한 1년여 계속 해왔던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작업으로 한여름이 훌쩍 지나가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제 제법 집 꼴이 잡히긴 하더라고요! 그리고 나선 구들을 놓고 방바닥을 만듭니다.

원적외선이 나온다는 황토도 깔고, 소금도 깔고,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흙물 도배도 하고, 화장실도 만들고, 대문도 달고, 주방도 만들고, 뭐 셀 수도 없는 수많은 과정들을 세월과 함께 견뎌가며 하루하루 시간과 고독과의 싸움속에서 3년여가 지나 갑니다.
그렇게 "흙집 연"이 우뚝 서게 됩니다.
가족들의 사랑과 노력 그리고 지고지순하고 멍청한 끈기 속에 태어난 집이 바로 "흙집 연"입니다.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옥정리....회문산 자락을 기대서서 섬진강의 몸통에 발을 담그고 대지 700평, 건평 45평, 방 여섯개와 공동주방, 서재와, 수영장까지 갖춘 한 사나이의 꿈이 그렇게 완성이 됐습니다.

사나이 한평생 할 일도 많고, 갈 곳도 많겠지만
어떻게 집 한채 지어보실랍니까???

 



Posted by 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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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까래를 아십니까!
한옥을 지을 때 도리와 도리사이, 보와 보사이를 이어주는 지붕구조의 부재료 중 하나를 서까래라고 합니다.
대개의 경우 한옥에는 반듯한 서까래를 얹는게 정석이지만 나무가 귀하고,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아 서민들은 가끔 구불구불 휘어진 서까래를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주에는 한옥마을이 있습니다.
전국에 한옥마을이라고 명명된 곳이 제법있지만
전주 한옥마을은 다른 곳과 좀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삶과 생활이 움직이고 있는 살아숨쉬는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위한, 그리고 으리으리한 공간은 아니지만 담과 담사이, 골목과 골목 사이를 이어주는 사람들의 정이 느껴지는 공간이 전주 한옥마을입니다.
전주 한옥마을의 한옥들에는 유독히 이 구불구불한 서까래가 많습니다. 서민들이 급하게 지은 한옥들이고 그당시 괞찬은 나무 구하기가 그리 쉽지않아서 그랬겠거니 합니다.

근데 이게 가만히 보면 반듯한 서까래 보다 구불구불 휘어진 서까래에 더 정이 가는 건 무슨 이유일까요!
보나, 기둥 역시 조금 휘어지거나, 어디가 모자란 구석이 있는 녀석이 마음에 들어옵니다.
모양새가 그래서 그렇지 건축구조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에 오시거들랑 구불구불 휘어진 애석한 서까래를 보면 아마도 저를 닮았으려니 그렇게 생각해 주세요!!

오늘은 한옥마을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현재 시점의 글을 올려야 맞겠지만......언젠가 임옥상 선생이 운영하는 문화우리 소식지에 한옥마을 관련 글을 올린게 떠올라
찾아보니 있더라구요!!

아마도 더위에 조금씩 지쳐가는 요즘 때에 맞지 않는 봄소식도 그런대로 괜찮겠다 싶어 올려봅니다. 


 봄이 왔다는 소리는 들었다.

그러고 보니 길거릴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 오는 봄을 꽤나 재촉하고 싶은가들 보다. 계절이 바뀌는 것이야 언제나 마음 설레는 일이지만 유독 봄이 오는 건 유난스럽고, 반갑고, 자발 맞고, 그렇다.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여인의 치맛자락이, 물오른 나뭇가지에 생명의 순환과 억척스러움을 증명해 보이는 새싹들이, 이제는 봄이라며 연신 사나이가슴에 불을 지른다. 남들 다 아는 봄소식을 혼자만 모르고 있다가 화들짝 놀란 꼴이라니........

 

여차저차 곁에 와있는 봄을 나 몰라라 하고 있던 부채도 탕감하고, 문화우리에서 던져준 숙제도 해결해 볼 요량으로 나만의 봄맞이를 나가봤다. 누구처럼 그럴싸한 일정 잡아 풀코스로 즐기는 봄맞이는 아니지만 소박하게나마 즐겨볼 요량으로 나선 길이다.

한옥마을.

전주에는 한옥마을이 있다. 아는 분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뭐 그리 대단한 건축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적 전통가옥의 정형을 갖추었다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그저 고만고만한 한옥들이 힘겹게 어깨를 맞대고 세월을 버텨내고 있는 사람 사는 공간이다. 굳이 한옥마을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전북대학교 도시공학과 채병선 교수의 설명을 빌어보자면 “교동, 풍남동 일대의 도시한옥은 1900년 이후 호남평야에서 농업생산으로 부를 축적한 대, 소 지주와 자본을 축적한 중소상인들이 신흥자본가가 되어 전주에 모여들면서 고급주택가인 한옥집단지역을 형성한 것이 그 시초이다.”

 

한옥마을을 한눈에 확인하려면 먼저 오목대에 올라야 한다. 64만의 도심 한가운데에 다소곳이 이어진 기와지붕들의 전경은 그래도 정겹다. 군데군데 봄을 맞아 보수작업이 한창인 곳도 보이고, 그새 새로운 이름으로 새 단장하고 앉은 건물들도 눈에 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는 한옥마을의 모습이다.

한옥마을이 정겨운 것은 그곳에 생활이 있고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기위해 한옥을 새롭게 짓고 또는 고치면서 일상 속에서의 한옥 쓰임새를 궁리하는 곳은 이곳 전주 말고는 없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 일상 속에서 한참은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 바로 한옥일진대 전주는 유독 한옥 짓고 사는 일에 대해서 관심도 많고 기대도 높다.

 

전주 한옥마을이라는 공간이 갖는 또 하나의 매력은 역사유적과 문화시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태조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경기전과 전남 제주도까지 관할하던 전주향교, 이성계가 조선창업을 만천하에 알린 오목대, 조선시대 시인묵객들이 전주천의 아름다움에 반해 시를 읊었던 한벽루 등 역사유적과 함께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한옥마을 곳곳에 자리한

공예품전시관, 전통술박물관, 한옥생활체험관 등 몇몇 문화공간이 한옥마을을 문화적 환경을 갖춘 삶의 공간으로 바꿔낸 주역들이다.

오래되어 낡고 슬럼화 되어 가던 한옥마을에 몇 개의 문화시설을 세우고 도로와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나니 한옥마을은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윤기 있는 삶의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한옥마을속에서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발길을 옮기다보면

한옥마을의 골목, 골목길들이 이어진다.

관광객들을 위해 배려된 공간이 아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살기 위해 만들어낸 조그만 골목들이 한옥마을 지붕들 사이로 거미줄처럼 엉켜있다.

집이 들어서고 담장이 만들어지고 최소한의 통로로서 지켜온 바로 골목이 아닌가!

계획 없이 만들어진 길이기에 골목에는 황당함과 의외성의 재미가 쏠쏠하다.

 

 

큰길에서 보면 막다른 길처럼 보여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 들어서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숨길을 이어가는 ‘내 끝을 찾아봐’ 골목이 있는가 하면, 제법 모양새를 갖췄다 싶어 군침을 흘리며 발걸음을 재촉하면 이내 막다른 길이 발길을 막아버리는 황당한 ‘속았지롱’ 골목도 있다.

 

지나치는 행인의 발소리만으로도 동네사람인지 아닌지를 기가 막히게 구별해내는 견공의 텃새에 혼비백산 줄행랑을 치게 만드는 ‘함부로 들어 오지마’ 골목도 있고, 발걸음 멈추고 시어미와 며느리의 새살인지, 판소리 한대목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되는 구수한 입담에 한창이나 사생활침해의 엿듣기 재미를 주는 ‘내 이야기를 들어봐’ 골목은 제법 문학적인 맛이 있다.

 

 

위태위태 지난겨울을 견뎌준 돌담에 황토를 발라 보수를 해놓은 것이 손가락자국 선명히 드러나 보여도 아름답게 다가오는 ‘나도 화가여’ 골목은 아틀리에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골목길 거친 시멘트 바닥을 뚫고 여기 이렇게 봄이 왔노라고 얼굴 내민 들풀은 어느새 꽃을 피웠다. 그나마 풍수를 알고 양택을 잘한 팔자 좋은 들풀이 살고 있는 ‘여기가 명당’ 골목이다.

 

골목의 사전적 의미는 “동네가운데의 좁은 길, 큰길에서 동네로 들어가는 좁은 길” 이라고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골목이 주는 의미가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어린아이가 세상과 대면을 하기위해 대문을 열고 나섰을 때 처음으로 만나는 골목은 또 다른 세상을 여는 시작의 공간이며 놀이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이웃집 친구를 사귀고 비밀스런 추억을 만들며, 평생을 이어갈 소중한 기억들을 저장해나간다. 사춘기시절 마음 빼앗긴 여학생 뒤를 따라 하릴없이 서성거리다 처음으로 말을 건넨 곳도 골목이며,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설렘으로 손을 마주잡던 풋사랑의 공간도 골목이다.

이웃과 이웃이 만나 공동체를 구성하고 서로의 문화를 나누는 골목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의 공간이다. 쓰레기봉투 잘못 내놨다가 한바탕 전쟁을 치루는 싸움의 공간이고, 늦은 귀가길 얼큰한 술기운에 마주친 앞집사람의 손을 잡고 한잔만 더하자며 온정을 나누던 화합의 공간이다.

 

길은 길로 이어져 끝이 없고 골목은 길의 시작이자 끝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힘으로써 추억의 편린들이 금빛 기쁨의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는 공간으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의 공간으로, 골목은 우리들 삶을 윤기 있게 채워주는 힘을 지닌다.

 

한옥마을은 지금 기와지붕과 지붕이 어깨 기대고 서서 낮은 담사이로 골목길을 오가는 사람들과 함께 새 싹을 피우고 있다.

양지바른 한옥마을 골목길에서 이름 모를 들꽃과 눈 맞추며 잊고 살았던 아련한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본다. 봄은 그렇게 와 있었다.



Posted by 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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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 현우랍니다.




여섯살배기 아들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현우라고요!! 김현우
김제 학성강당의 화석 김수현선생이 첨에 이름을 김창신으로 지어주셨는데 집안 식구들이 이름이 너무 센거 같다고 다시 청하여 받은 이름이 현우입니다. 어질현 비우....
뭐 어짐을 많이 가지고 태어나 온 세상에 어짐을 비처럼 내리라는 의미랍니다.

근데 뭐 아직은 잘 모르겠고,
첫애를 딸내미로 키워서 그런지 이녀석 키우는게 장난이 아닙니다.
거의 매일 소리지르기와 매타작이 있어야 하루해가 넘어가니까요!!
이 놈 노는걸 한번 보시지요!!



엄마 아빠가 맞벌이라 할머니가 집에 오셔서 봐주십니다.
저희 어머니시죠!! 어머니 왈 "내가 손자들 다 키웠지만 저런 놈은 처음본다." "도대체 뭘 먹고 저런 물건을 낳았냐"
뭐 우리는 할말이 없을 뿐입니다.
이녀석 보는게 얼마나 괴롭고 힘든 일인지 잘 아니까요!!
그런 말이 있죠! 밭에 나가 밭맬래? 아기 볼래? 그럼 밭 맨다구요!!
암튼 저희 어머니는 이녀석 키우면서 폭삭 늙어 버리셨답니다.
기운이 너무 넘치는 것 같아 큰아버지(저희 형님)가 얼마전 샌드백을 사다 주셨습니다.
이놈 샌드백 치는거 함 보실래요!!

이쯤되면 이종격투기 시켜도 되려나요?!
참 특이하게도 이놈 잠 잘때 버릇은 제 수염을 문지르고 자는 겁니다.
하고 많은 버릇 다 놔두고 꺼끄러운 수염을 손으로, 얼굴로, 발로 문지르며 잠을 청합니다. 아파 죽겠어요!
면도 하고 있으면 와서 그래요 "아빠는 내가 싫은가봐요? 왜 면도하세요?"......환장하겠습니다.
대게 애들은 부드러운 거 좋아하지 않나요?
정 못하게 하면 삼베 배개를 문지르고 잡니다......................
특기는 누나 울리기, 취미는 말 안듣기 뭐 대충 그 정도 입니다.
그래도 가끔 이놈이 이런 웃음도 준답니다.


여섯 살 현우는 오늘도 유치원에 갔고,
이따 저녁이면 또다시 누나를 울릴거고,
하지마라는 말짓하다가 또 한대 맞을 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이제는 혼내는건 그만할려구요!!
녀석의 기운넘침은 아마도 지 나름대로의 세상과의 소통일게고
답답한 아파트 작은 공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몸부림일지도 모르니까요!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다 제 맘 같겠지요!
어쩌면 저희 부모님도 저를 그런 맘으로 키우지 않았을까하는 짐작도 해봅니다.
사랑하는 현우!!
오늘도 행복하고 기운넘치는 하루를 보내길 기원합니다. 

Posted by 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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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딸 아이와 안 사람은 먼저 집을 나서고
여섯 배기 아들녀석 유치원 차를 태우려고 집을 나서려다 집안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먼저 딸 아이 방 문을 여니 이랬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열 한살 먹은 딸 아이는 저희 반에서 제일 키가 크고 제법 어른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어린애 입니다.
저희 부부는 맞벌이라 어려서부터 할머니 손에 자라며 꼼꼼하고 깔끔한 할머니의 영향을 받았을 법도 하련만 치우고 정리하는 데는 영 소질이 없는가 봅니다.
그리고 나서 안방 문을 열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랬습니다.

아마도 할머니가 보셨다면 "뱀이 허물 벗어논 것 같다."고 하셨을 겁니다.
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고등학교 1학년에 만나 서른 세 살에 결혼에 골인 하기까지 참 긴 세월동안 안사람과 만나왔지만 집안에서의 문화를 서로 공유할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혼 초기에는 많이 다투기도 했었지요!
상황은 이랬습니다.
하루에 두 번 이상 걸레 청소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집안에서 자란 저와, 집안 청소는 명절 행사 정도로 생각하는 집안에서 자란 안사람의 문화는 서로 이해 할 수 없었지요!
뭐 어떤 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막연한 스트레스..........

상당히 개방적인 집안의 분위기에서 자란 저는 결혼 초부터 어렵고 힘든 집안 일들은 제가 하는게 옳다고 생각하고, 집안 청소 역시 손수 해결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무슨 일이 있거나 어딜 다녀와서 청소를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당연히 안 사람이 청소를 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겁니다.
한번은 언제까지 청소가 안 되나 보자 하고 지내 봤더니 일주일이 넘도록 집안은 치워질 줄을 몰랐지요!
그래서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왜 청소 안하는데?"
"응 그거 당신 일이잖아!"
"뭐라고? 당신 힘들까봐 내가 도와준거지!!"
"무슨 소리야 도와주다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뭐 나는 그렇게 청소 안해도 살만해"
..........................
그러다가 결국 대판 싸웠지요!!

결혼 11년차가 된 지금은 서로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길들여지고 뭐 그런데로 살만합니다.
제가 제시했던 결혼 공약 중 1순위인 '아침 밥  꼭 챙겨주기'의 약속은 안사람이 무슨일이 있어도 지켜주고
뭐 나는 그 외의 거의 모든 일을 하고 있지요! 청소, 빨레, 집안정리, 기타등등......

조금 억울할 법도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정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문화의 차이고, 선택하는  문제이기에.......
안 사람은 대단히 창조적이고 활동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타입입니다. 방송작가로 십년 넘게 생활하다가 지금은 전문직공무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방송계의 퓰리처상이라는 피버디상을 동양에서는 처음으로 받았던 역량있는 작가였고, 지금도 전주의 전통문화를 지키고 가꾸는 공무원으로서의 역할을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조금 어지르고 살고, 치우고 정리하는데 게으르다고 누가 뭐라 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그런 유전자가 딸 아이에게도 전달되나 봅니다.
할머니와 제가 공동전선을 펼치며 깔끔하고 정돈 잘하는 아이로 키울려고 참 많은 노력을 해왔는데.....
그게 맘 같이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두 여자의 방과
벗어 놓고 간 흔적을 보며 혼자서 참 많이 웃었습니다.
피는 못 속이는 구나! 
어쩌겠어요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아쉬운 제가 치우고 정리하고 살아야지요!!
그래도 지 엄마 닮아서 그런지 제법 똑소리나는 성격에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고 어른들에게 인정받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답니다.
이거 오늘 팔불출 제대로 된거 아닌가 싶네요!!

그래도 점점 닮아가는 두 여자와의 사랑이 오늘도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근데 이글과 사진 우리 안사람이 보면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블로그 패쇄해야할지도............  
암튼 오늘은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식 보러 갑니다.



추신 : 요즘 안 사람은 전통만이 살 길이라며 고추장, 된장, 간장 담고 사는 게 앞으로의 꿈이랍니다. 그래서 단독주택자리도 물색하고 있구요!! 맞는 말이긴 하고 저 역시 좋긴 한데....평소 안 사람의 성격을 봐서는 그 모든 일이 저의 일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려... 
전통 좋지요! 전통문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도시 전주에 사는게 행복합니다.................
Posted by 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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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좋아 했습니다.
10대에는 뭣 모르고 그냥 다녔고,
20대에는 정상을 정복하는 재미에 쉬지 않고 오르기만 했습니다.
30대에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이야기의 재미가 쏠쏠 했습니다.
40대가 넘어선 지금, 오르기보다는 만남이 좋아 산을 찾습니다.
길가에서 마주치는 들꽃의 이야기가 발목을 잡고, 구부러져 볼 품 없는 나무들도 말을 걸어 옵니다. 그러면 한참을 나무에 기대서서 '나 여기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느냐고' 속삭입니다. 고만고만한 바위를 만나면 걸터 앉아 잔등을 쓸어주기도하고, 널다랗고 장하게 생긴 큰 바위를 만나면 아예 드러누워 하늘을 보다가 한 숨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정상을 오르는 것은 열에 한 두번 밖에 되지 않지만 그래도 그게 좋습니다. 나와 그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꽃 한 송이 드립니다.



나이 40이 넘어 블로그와 첫 만남을 준비하는 것이 아마도 20대에 산을 오르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에 만나 서른세살 결혼에 성공한? 아내와 초등학교 4학년 딸, 그리고 6살배기 아들내미.....
사회에서는 제법 중견의 나이에 어쩌면 노후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는 위태위태한 이 땅의 40대 가장으로서 고만고만한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가슴 콩닥콩닥 거리던 설레임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래도 설레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결혼생활 11년차, 연애까지 합치면 25년을 함께 해 온 아내는 아직도 가끔은 나를 설레이게 합니다. 조금은 민망한 스커트를 들어올리며 "좀 짧아 보이나?" 물어볼 때 힐긋 쳐다보며 건성으로 "괜찮은거 같아" 대답하지만 신경쓰이고, 나가는 뒷모습을 다시 쳐다보며 마른침을 한번 삼키기도 합니다. 
어쩌다 늦은 저녁 취기가 약간 올라 방안에 들어섰는데 아들 녀석과 잠들어 있는 아내의 숨소리가  설레임을 주기도 합니다. 조금 주책인가요?!?! 그렇게 행복합니다.
그래도 허전한 가슴 한구석을 다 매울 수는 없는가 봅니다. 



그래서 설레이고 싶습니다. 얽히고 싶습니다.
첫 만남을 준비하며 참 많이 설레이기도 했고, 서툴기도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젊은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기웃기웃 거려 보기도 하지만 도무지 감당이 안됩니다. "젠장 차라리 연애나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럴 깜냥도 못되나 봅니다.
그래서 그냥 시작 하려구요! 하다보면 잘 될지도 모르잖아요!
이 만남을 통해서 소리를 울리고 싶습니다. 기쁠 땐 기쁘다고, 화날 땐 화난다고, 슬플 땐 슬프다고, 즐거울 땐 즐겁다고...... 그러다 보면 가끔 또닥여 주는 분도 계시겠지요. 그렇게 서로서로 또닥여 주며, 설레임을 주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이 마흔 셋에 서툰 연애를 시작합니다. 

Posted by 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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