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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5 동문사거리 막걸리집에 대한 몇가지 단상 by 솔소리 (10)
막걸리집 얘기를 해볼까?

내가 살고 있는 전주에서 80년대를 풍미했던 막걸리집 얘기를 해볼까 한다.
지금은 전주의 중심지가 관통로를 너머 중앙동 일대로 옮겨왔지만
예전에는 미원탑(알만한 분은 아는)이 있던 아카데미극장 사거리에서
동부시장 쪽으로 뚫린 경원동 일대가 전주의 번화가 이었던 적이 있다.
이곳엔 지금도 홍지서림이 있어 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두고 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그 이름들...
세종집, 경원집, 한성집, 후문집,
한때 이곳 경원동 동문사거리 일대의 시인묵객들과 혈기 넘치던 대학생들이 부어라 마셔라 하던 80년대를 풍미했던 막걸리 집의 이름들이다.
먼저 세종집 얘기를 해볼까?

동부시장 사거리 건너편에 자리 잡았던 세종집은 주로 대학생들과 가난한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여들던 곳이다.
주인아줌마의 쌀쌀맞은 말투를 시작으로 병치회, 닭죽 등 한 상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안주들은 언제나 공짜.
막걸리 값만 지불하면 안주는 정말 배가 터지게 먹을 수 있었다.
이 집에선 덩치 큰 주인아줌마와는 자못 대조적으로 보이는 비쩍 마른 몸과 주독이 올라 딸기코가 되어버린 주인 아저씨가 언제나 그렇듯 아줌마의 끊기지 않는 잔소리를 들으며 아줌마는 주방에서 아저씨는 손님들 사이를 부산하게 움직이던 장면이 떠오른다.
아저씨는 손님들이 따라주는 막걸리를 절묘하게 아줌마의 눈을 피해가며 한잔 두잔 받아 마셔 저녁 무렵이면 벌겋게 취기가 올라 갈 짖자 걸음으로 안주접시를 위태위태하게, 하지만 한번의 실수도 없이 잘도 날랐다.
어느 핸가 군에 있다 휴가 나와 들린 세종집에서 주인아저씨는 " 내일이면 이제 이 짓도 그만이야" "자식놈들도 다 키웠고 몸도 안 좋고 해서 그만 둘 라고" 하며 긴 담배연기를 내뿜던 아저씨의 모습을 끝으로 세종 집은 자취를 감추었다.
세종집 아줌마 아저씨
어디선가 건강하시죠

다음으로 동문사거리에 손바닥만하게 자리 잡은 경원집 얘기를 해볼까?

경원집은 지금까지 문을 열고 있는 유일한 막걸리 집이다.
몇해전인가 주인은 한번 바뀌었다.
이 집은 정말 손바닥만하다.
발디딜 틈도 없는 주방을 빼고 나면 테이블은 고작 서너 개가 전부이지만,
지금도 그 곳엔 빈자리가 없다.

주로 경원동 일대에 직장을 다니던 아저씨들이 퇴근 후에 피로를 풀고,
스트레스를 풀고, 억압을 풀고, 자유를 꿈꾸던 경원집은 그날 받아놓은 막걸리가 떨어지면 그 시간이 문 닫는 시간이었다. 대개 9시에서 11시면 술은 동이나서 주당들은 툴툴거리며 자리를 떠야 했다.
자리가 워낙 좁다보니 주방 앞에 서서 선 채로 막걸리 사발을 들이켜던 술꾼들의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 유리창으로 된 미닫이 문 넘어 보이던
하얗게 피어오르는 김과 부산한 주인아줌마의 손놀림, 왁자지껄한 술꾼들의 실루엣이 아련한 기억 속에 떠오른다.
주인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이 집은 정통막걸리집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몇 안 되는 집중에 하나로 남아 있다.

사진 찍는 이흥재선생님!
언제 경원집에서 막걸리 한잔하며 언젠가는 사라질지 모를
막걸리 집 이야기들을 사진 속에 한번 담아 보십시다.


다음으로 한성집
지금은 없어진 아리랑제과소 사거리에 자리잡은 한성집은 이상커피숍에
진을 치고 살던 글쓰는 사람들과 소극장에서 연극을 하던 연극인들,
미술가들, 그리고 나이 많은 원로 서예가들이 자주 찾던 막걸리 집이다.
한마디로 예술쟁이들의 아지트 였다고나 할까?
거의 매일 들러 몇순배 안 되는 술을 마시고 조용히 일어나시던 원로 서예가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젊은 층들은 피우던 담배도 끄고 시끄럽게
늘어놓던 농지거리도 조금 목소리를 낮춰 예를 갖췄다.
나역시 군대 제대후 거의 몇 년 동안 이상커피숍과 한성집을 오가며 세월을 보내던 적이 있다.
그때 친구녀석들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주인 아주머니 자식녀석 대학교
학자금은 우리가 마신 술값으로 치르고도 남는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한성집 가득히 담배 연기를 뿜으며 문학을 얘기하고, 예술을 얘기하고, 삶을 얘기하던 주당 분들 잘들 사시는지......
성공했으면 막걸리 한잔 사슈?????
한성집도 동문사거리 경원동의 몰락과 함께 어느 날 자취를 감춰 버렸다.
홍지서림 아래 쪽 골 목안에 있던 후문집은 주로 대학생들의 모임장소였다.
술장사하면서 상냥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이 집 주인 아저씨는 솔찮히 퉁명스러웠다.
하지만 젊은 대학생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이만한 안주에 술까지 마실 수 있는 장소로는 후문집 만한 곳도 드물었던 성싶다.
이 곳엔 언제나 치기 넘치는 대학생들의 목청 높은 논쟁과 웃음소리,
탁자를 두들기며 불러제끼는 운동가요가 이 집의 분위기를 활기차게 해주었다.
화장실엔 언제나 누군가가 "오늘 아침에 내가 뭘 먹었는지 가리켜 줄께" 하며 남겨놓은 증거물들이 지저분했고 처음 마신 술에 취해 눈물에 콧물까지 흘려가며 술주정을 해대 던 어린 여대생들의 비틀거림이 있었다.
젊은 날의 열정과 좌절을 막걸리 한잔에 풀어내던 후문집은 그 시대를
살던 젊은이들의 유일한 탈출구 중에 한군데가 아니었을까..........
이제는 사라진 그곳 한성집, 후문집, 세종집, 그리고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경원집.
이 이름들 속에 얼마나 많은 추억과 한숨과 눈물과 기쁨들이 묻어 있을까? 보고싶다 그 사람들. 마시고 싶다 그 집의 그 막걸리를........
한시대의 뒤안길을 차분히 정리 해 주던 그리운 막걸리집들이 하나씩
없어져 갈 때마다 왠지 서글퍼지는 건 내가 술을 좋아하는 술꾼이어서
만은 아닐 게다.
오늘밤 어디 가서 막걸리나 한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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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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