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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10 옥룡설산 아래, 우리를 기다리는 나시족 여인 by 솔소리 (16)

작년 꼭 이맘 때......
중국 운남성 기행을 다녀왔습니다.
4박5일의 여정 중 2009년 8월 10일, 일년 전 오늘
오전에는 옥룡설산 해발 4,600m를 오르고 오후에 중국의 소수 민족과 장예모 감독이 만들어낸
"인상여강"을 관람했습니다.

사실 관람이라는 말이 적당한지는 모르겠습니다.
하늘과 산도 구경하는 초대형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이 공연은 나시족 등 중국소수민족의 삶과 애환을 담고 있는 "대 서사시"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차마고도"의 힘겹고 기나긴 여정이 바로 이들의 삶이고, 기쁨이고, 슬픔이었던 이유입니다.

사진 몇 장으로 이 장대한 서사시를 보여 줄 수는 없지만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를 눈으로 마음으로 나마 식혀보시라고 몇 컷 올려 봅니다.

아래 첨부한 글은 함께 기행을 다녀온 그 때 당시 JTV전주방송 김선경 작가가 문화저널에 올린 기행문을 붙였습니다.


소수민족, 그 빛나는 존재들

김선경 (JTV전주방송작가)

남편은 말 타고 멀리 떠났다.
한번 떠나면 살아 돌아오기 힘든 길. 백척간두의 차마고도.
그곳 마방에서 차를 팔아 돈을 벌어올 때까지, 아내는 집에서 남편을 기다린다.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아이는 자란다. 몸보다 커다란 광주리를 등에 지고 매일같이 일을 하며 남편은 기다리는 여인. 남편이 그리울 때면 아버지 같은 옥룡설산을 바라보며 마음속 기도를 올린다. 내가 죽기 전에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그렇게 평생을 일과 기도로 살아가는 여인. 나시족 여인이다.

중국 윈난성에는 나시족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이 많이 살고 있다. 거대한 한족에 비하면 이들 소수민족은 ‘새발의 피’다. 아무도 이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이들도 세상에 관심이 없었다. 이들은 차마고도 골짜기에 은둔하다시피 살면서 평생을 농사밖에 모르고 살아왔다. 글자도 자기들만의 상형문자를 만들어서 썼고, 세상을 관할하는 신은 개구리라고 믿었다. 현대인들의 눈으로 보면 미개하기 그지없는 소수민족. 차마고도가 사라지면서부터는 자신들의 손으로는 돈을 벌 줄도 몰랐고, 세상과 소통할 줄도 몰랐다. 설령 이들이 사라진다 해도 거대한 중국대륙은 아무런 미동조차 느끼지 못할 터였다.

그런데 이들에게 주목한 사람이 있었다. 이들에게 “당신들은 빛나는 존재”라고 일깨워준 사람이 있었다. 이들에게 배우라는 제2의 삶을 살게 해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장이모우 감독이다. 그는 왕조가, 판웨라는 두 명의 연출자와 함께 중국 전통문화를 다룬 <인상 프로젝트>를 만들어냈다. 그 중 하나가 <인상여강>이라는 작품이다.

백제기행팀이 <인상여강>을 관람한 날은 지난 8월 10일. 해발 4,600미터의 옥룡설산을 다녀 온 직후였다. 고산을 오르면서 인공 산소를 어찌나 배불리 먹었는지 점심도 잘 먹히지 않았다. <인상여강>이 올려지는 공연장은 점심을 먹은 식당 근처에 있었다. 옥룡설산에 오르는 관광객들은 누구나 이곳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똑같은 시간에 <인상여강>을 관람한다.
야외공연장이라 관람석은 모두 돌로 되어 있다. 무대 또한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석벽이다. 그 석벽 사이사이로 지그재그 형태의 길이 나 있다. 차마고도 백척간두의 낭떠러지 길을 표현한 것이다. 석벽 뒤로는 옥룡설산이 머리에 흰 눈을 이고 서 있다. 구름에 가려 언뜻 언뜻 보이는 옥룡설산은 그 자체로 천연 스크린이다. 이 단순한 무대 세트에는 윈난성 소수민족의 삶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그들의 삶은 그처럼 단순하고 그처럼 위태로웠다. 장이모우 감독은 이 세트를 아코디언 연주하듯 옆으로 늘렸다가 가운데로 모으기를 반복한다. 사람들이 흩어지면 시야가 넓어지고 사람들이 모이면 시야가 좁아진다. 마치 무대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나의 구식 디지털 자동카메라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을 만큼 쫙쫙 늘려지는 무대.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는 듯, 아예 관객들 뒤편으로 360도를 내달리는 배우들. 한국의 마당극에서나 볼 법한 무대 활용을 장이모우 감독은 해내고 있었다.
무대 운용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극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도 장이모우 감독은 관객과의 소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듯 했다. 극이 시작되면 각 종족별로 나와서 무대 인사를 한다. 이를 테면 “우리는 장족입니다. 잘 봐 주십쇼!” “우리는 백족입니다, 이하동문!” 이런 식이다. 종족 인사가 끝나면 “우리는 전문배우가 아니니 혹시 실수하거나 잘못 해도 웃지 말아 달라”고 정중하게 주문을 한다. 험담을 듣기 싫어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민족 주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뒤에 보면 알겠지만, 그들은 실수해서 지탄을 받을 만큼 미숙한 배우들이 결코 아니다. 그들은 수없이 단련되고 단련된 초일류 배우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 배우가 됐을까?

사연은 이렇다. 장이모우 감독이 인상 프로젝트 팀을 만들고 배우를 모집하자, 윈난성에 살고 있는 10개 소수민족 500명의 사람들이 주저 없이 달려왔다. 그들은 오직 ‘장이모우’라는 이름만 보고 선택을 했노라 했다. 장이모우 감독의 작품에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평생의 영광이라 했다. 그들은 장이모우 감독이 지어준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고향의 가족들과도 3년간이나 떨어져서 살고 있다. 앞으로도 몇 년을 더 떨어져 살아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장이모우 감독의 위대함 때문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진짜 이유는 소수민족의 삶에 있다. 그들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로부터 프러포즈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제안 받은 것은 장이모우 감독이 처음이었다. 그들의 인생에는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세계적인 감독이 찾아와 “너 배우 해볼래?” 한 것이다. 그것을 거절할 만큼 간이 큰 사람이 소수민족들 가운데는 없었다. 10개 민족, 500여명의 장정과 여인네들이 짐을 싸들고 장이모우 감독의 기숙사로 찾아왔다. 농사짓다가 죽는 것이 인생의 전부였던 소수민족들. 그들에게 배우로서의 삶은 너무나 멋진 세계였다. 그래서 1년이라는 혹독한 수련기간을 거쳐 배우로 거듭난 것이다.
공연 내내 느껴지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너무나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부심으로 대사를 하고, 자부심으로 노래를 하고, 자부심으로 팔과 다리를 힘차게 내지른다. 너희들 보이지? 이게 바로 소수민족의 힘이야. 우리에겐 이런 역사가 있고 이런 문화가 있단다. 너희들은 있냐?언어의 소통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장이모우 감독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소수민족의 삶이 느껴질 수 있도록, 단순하면서도 선명하게 스토리 라인을 짰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스토리는 각 장마다 약간 짧은 듯 아쉬움이 남지만, 그만큼 빠른 호흡으로 이어져서 끝까지 감동을 준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간결한 동작들. 힘 있는 합창들. 그리고 눈빛으로 말하는 배우들의 열정. 그리고 그 위에 하나를 더 보탠다면 장이머우 감독의 빼어난 색채감각이다. 알려진 대로 장이모우 감독은 색채의 마술사다. 소수민족들의 알록달록한 전통복식은 그 자체로 훌륭한 언어다. 하양, 노랑, 초록, 파랑, 검정 등 강렬한 원색들이 아무런 장치도 없는 무대를 화려하게 빛내준다.
그들은 공연 중에도, 공연이 끝난 후에도 관객들과 눈빛을 마주치려고 애를 쓴다. 관객들의 박수에 우쭐해하고, 관객들의 환호에 진심으로 고마워한다.

장이모우는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작품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혹시 그는, 소수민족들의 역사와 문화까지도 공연상품으로 팔아먹을 만큼 노회한 기획자는 아닐까? 이런 의심이 슬쩍 생겨나기도 한다. 나 말고도 누군가 이런 의심을 했는지, 왕조가 연출자가 이런 인터뷰를 했다.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팔아 관광객을 모으는 상품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거대한 야외공연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교류와 문화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농민에서 배우로 전직한 출연진들의 생각은 어떨까? 장이모우 감독의 배우가 되고 싶어서 고향도 버리고 가족도 버리고 여기까지 온 사람들. 소수민족 촌장의 마지막 대사 속에는 그들의 생각이 잘 담겨 있다. “우리는 농민입니다. 우리는 빛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 작품에 마음을 바쳤습니다. 꼭 다시 와 주십시오!”이 말은 다음 공연도 꼭 보러 와달라는 부탁이 아니라, 당신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는 호의적인 데이트 제안으로 들린다.

그들의 마지막 말은 “여기서 당신들이 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이다. 옥룡설산 밑에서 나를 기다리겠다니, 돌아가는 길 내내 어찌 눈에 밟히지 않으랴.
그들의 공연을 보는 내내 가슴 벅차면서도, 뭔지 모를 애잔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것은, 그들이 무대에서 보여준 이야기가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소수민족의 삶은 나아진 것이 없다. 기행팀이 도착하기 며칠 전에도 윈난성에서는 버스테러가 발생했고 바로 옆 신장지구에서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티벳의 경우야 말해서 무엇하리. 억압받는 현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그 현실을 바꾸려 애쓰지 않고, 그들의 과거를 문화상품으로 만들어 찬양하는 행위가 과연 완전히 온당한 것일까? 장이모우 감독도 이 물음에서 충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저런 생각들 때문에 <인상여강>을 보고 난 후 사람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한숨을 쉬었다.
삶이란, 생각하기에 따라서 얼마나 구차하면서도 또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제아무리 거대한 우주도 한 사람의 피 흘리는 고통보다 크지는 않다고 했다. 이제 거대한 중국 대륙은 한 사람의 고통에 대해 주목해야 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부디 장이모우 감독의 <인상프로젝트>가 한 사람의 피 흘리는 고통에 대한 응시이기를, 그리하여 가장 작은 한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여정이기를 기대해 본다.



Posted by 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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